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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천지 작성일20-07-01 13:32 조회4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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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내 외곽투쟁' 한계, 당내 상임위 복귀 희망 여론 확산
권한쟁의심판 통해 상임위 '강제 배정' 항의…곧 명단 낼 듯
여권 추경 심사 연장 불가로 추경안 표결 본회의 보이콧
7월 임시국회 공수처법 반대 명분 삼아 전면 복귀 가능성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주호영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0.06.30.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준호 기자 = 미래통합당이 원내 외곽투쟁을 접고 국회 의사일정에 정상 참여하기 위한 등원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 21대 국회의 임기가 시작된 지 한 달만에 반쪽 국회가 이르면 다음 주부터는 정상 가동하지 않겠냐는 관측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통합당은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달 29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비장한 각오로 "더불어민주당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의사일정에는 당분간 전혀 참여하지 않겠다"고 가열찬 대여 투쟁을 선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출구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국회 상임위로 회군을 고심하는 배경에는 3차 추경안, 공수처 출범 등 굵직한 현안이 산적한 시점에 상임위 밖 외곽투쟁만으로는 대여 투쟁이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는 당내 현실론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야당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고 여당을 견제, 압박하기 위해선 상임위 안에 들어가서 투쟁을 해야 한다는 당위론도 초선을 비롯한 상당수 의원 사이에 퍼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단독 상임위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추경안을 불과 몇 시간만에 대부분 정부 원안대로 통과시키거나 오히려 증액해 35조원에서 38조원으로 늘어난 '초(超)슈퍼 추경안'이 국회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는 점도 통합당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졸속 추경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를 견제하지 않은 야당의 국정 방조도 여당의 독주 못지 않게 문제라는 비판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듯 주 원내대표는 이날 JTBC 인터뷰에서 "저희들은 처음부터 우리가 가장 잘 투쟁할 수 있는 장소는 국회라고 말씀드렸고 뺨을 두들겨 맞고 바로 돌아가서 웃을 수는 없지만은 우리가 국회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말씀드렸기 때문에 보이콧이 길어지진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박민석 기자 = 미래통합당 국회의원들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민원실에서 국회의장 상임위 강제배정 및 상임위원장 선출 무효 확인을 위한 권한쟁의심판청구서를 제출하기 위해 접수처로 이동하고 있다. 2020.07.01. photo@newsis.com
통합당의 국회 복귀 신호탄은 상임위원 사보임계 제출 시점에 따라 얼추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통합당은 박병석 국회의장이 상임위원을 강제 배정한 데 반발해 전원 사임계를 제출한 채 상임위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1일에는 상임위 강제배정 및 상임위원장 선출 무효 확인을 위한 권한쟁의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하며 날을 세웠다. 이는 민주당의 원(院) 구성 독주에 대한 항의 차원의 성격이 짙어 정국 경색 장기화를 의도하는 건 아니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부의장단과 협의 과정이 필요한 정보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상임위장 17석을 민주당이 가져간 만큼 통합당도 3선 중진을 비롯해 의원들의 상임위 재배정을 완료하는 대로 국회의장에 사보임계를 제출, 상임위 복귀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졸속 심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오는 3일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추경 속도전에 들어갔지만, 통합당은 추경 처리 시한을 늦추자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만큼 여당 독주에 '들러리' 서진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만희 통합당 의원은 BBS라디오 인터뷰에서 "사실상 우리가 추경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고 청와대와 여당이 우리가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봉쇄했다"며 "민주당의 단독 원 구성이라든지 법사위나 상임위 독식 문제 특히 야당 의원 전원을 의장께서 전문성에 관계없이 상임위에 강제 배정하는 그런 문제는 원내 교섭단체 역할이나 지위 자체도 묵살하고 추경안에 대해 거수기 역할이나 하라는 말밖에 더 되겠나. 사실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21대 국회가 민주당이 정보위를 제외한 모든 상임위원장을 차지하며 32년만에 상임위를 독차지하며 출발했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 103명 의원 전원은 상임위원회 사임계를 제출하며 의사일정 진행을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 모습. 2020.06.30. mangusta@newsis.com
통합당 최형두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여당과 국회의장은 국회를 청와대 출장소나 현금인출기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라며 "미래통합당은 거대여당의 폭주와 싹쓸이 앞에서 온갖 수모를 겪었지만, 예산 졸속심사를 막고 국민 혈세 빚을 아끼고 줄이기 위해 추경심사를 연기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여당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경 못지 않게 여권에 재촉하고 있는 공수처 출범이 임박해진 만큼 통합당이 '검찰개악', '반(反)독재정권' 투쟁을 명분 삼아 7월 임시국회에 등원하지 않겠냐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마침 여권 지도부에선 공수처 후속법안 처리와 공수처장 후보 인사청문회 등 공수처 출범 준비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7월 임시국회를 소집할 움직임이어서 통합당으로서는 오히려 등원 시점으로 보기에 적절한 타이밍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조해진 통합당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에 출연해 "여권이 밀어붙인 공수처는 권력의 눈치 안 보고 살아 있는 권력, 대통령과 그 주변 권력도 잘못이 있으면 수사할 수 있는 그런 기관으로 만든 게 아니고, 그 일을 하고 있는 윤석열과 검찰을 억압하기 위해서 출범시켰다는데 문제가 있다"며 "이건 검찰개혁이 아니라 검찰개악이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코미디언 김미려가 악플러에게 경고했다.

김미려는 지난달 3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그만 좀 합시다. 과거에 악플 남겼던 분들 다행인 줄 아세요. 캡처는 다 해놨지만”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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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김미려의 자녀 사진에 달린 댓글

공개된 사진에는 김미려 자녀의 사진에 “이상한데”라는 댓글을 남긴 악플러의 모습이 담겨있다.

김미려는 “뭐가 이상한데. 확실히 얘기해 주세요. 악플이면 저도 고소할 테니까”라며 “상대 잘 고르시고 내 새끼 건들지 마세요. 내가 고소당하는 일이 있더라도 내 자식한테 이상하게 말하면 가만있지 않아”라고 경고했다.

이어 “그쪽은 뭐가 이상한지. 이게 직업인가요? 내 새끼한테 악플 남기는 분들 답글 달아주길 원하는 거예요?”라며 “어떻게 관심을 가져줄까요? 이왕 남길 거 세게 남기지 유하게 남겨서 고소는 안 하고 공개만 할게요”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 번만 더 내 새끼 건드리면 진짜 물어뜯어요. 나 착하지만 지독한 사람이에요”라고 덧붙였다.

이를 본 누리꾼들도 김미려에 공감하며 악플을 비난했다. 한 누리꾼은 “애초에 악플 다는 게 이해도 안 되지만, 자식한테까지 이러는 건 못 참지”라고 말했다.
강원용 목사
[경향신문]


강원용은 회고록 <역사의 언덕에서>를 통해 “독선적이고 폐쇄적으로 대립하는 역사 속에서 나는 양극을 넘어선 제3지대에 내가 설 자리를 마련하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중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between and beyond)’ 살고자 했던 나는 항상 양극 사이에서 좁고 험한 길을 걸어야 했다”고 말했다.


2003년 봄날 예술마을 헤이리에 건축되는 ‘책의 집, 책을 위한 집’ 북하우스 착공행사에 강원용(姜元龍·1917~2006) 목사가 참석했다. 그날 강 목사는 방명록에 ‘신실크로드의 출발지’라고 적었다. 나는 1995년 북녘 땅이 건너다보이는 파주 통일동산 중심의 15만평에,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예술마을 헤이리 건설하기에 나서면서 다양한 기획을 진행하고 있었다. 북하우스는 한 출판인으로서 내가 오랫동안 꿈꾸던 프로그램이었다.

강원용 목사는 2004년 준공해 문을 여는 한길북하우스를 여러 차례 방문했다. 그랜드피아노를 닮은 건물의 미학과 서점의 오르막내리막 복도를 가득 채우는 수많은 사람들의 존재에 놀라워했다.

“책을 찾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 우리에겐 희망이 있네요.”

강원용 목사를 만나면서, 그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그가 체험한 한국현대사를 책으로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의 삶은 우리 민족 구성원들이 온몸으로 겪는 역사이고, 그의 체험적 성찰은 곧 한국현대사의 정신이고 사상일 터이기 때문이다.

“어떤 인사가 이상적인 민족 지도자라고 평가하시는지요?”

“몽양 여운형 선생입니다. 지금 남북한을 막론하고 몽양 같은 인물이 있다면 우리 역사는 달라질 겁니다. 그는 ‘열린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국가사회가 요구하는 정치인의 모델로 나는 몽양을 꼽습니다. 몽양은 우리 역사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시기에 지도자 자리에 있다가 끝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 자유언론실천 위해 농성하는 기자들 찾아 격려

‘사회운동 지도자 산실’ 운영하자
유신정권서 ‘공산주의’ 씌워 탄압

1975년 2월9일, 한국기독교연합회는 새문안교회에서 ‘신앙의 자유를 위한 연합 기도회’를 열었다. 일반 신자뿐 아니라 신민당 김영삼 총재 내외, 윤보선 전 대통령 내외, 정일형·이태영 변호사 내외, 함세웅 신부와 이희호 여사 등 30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강원용은 ‘자유케 하는 진리’를 설교했다.

이 기도회가 열렸을 때 동아일보에 대한 광고 탄압이 절정으로 가고 있었다. 1974년 10월24일 동아일보사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 이후 동아일보가 언론 기능을 회복해가자 박정희 권력은 광고 탄압을 가했고, 결국 광고면을 백지상태로 내보내는 신문이 제작되고 있었다. 강 목사는 “동아일보의 빈 광고란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메꾸라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라고 설교했다. 기도회가 끝난 뒤 즉석에서 ‘동아일보 돕기 모금운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동아일보사 경영진은 자유언론 실천운동에 나선 기자들을 해직시켰고, 이에 전체 기자들이 해직의 철회를 요구하면서 농성에 들어갔다.

나는 그때 동료들과 2층 조판공장에서 단식농성을 하고 있었다. 철대문을 회사 측이 밖에서 닫아버려 우리는 조판공장에 갇혀버린 형국이었다. 단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은 교정지를 도르래로 오르내리는 그 구멍으로 3층 편집국 농성장과 소통하고 있었다. 강 목사와 이태영 변호사가 편집국을 방문했다. 누군가가 “목사님,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조판공장의 농성자들이 들을 수 있게 강 목사는 그 도르래 구멍을 통해 기도했다.

“언론 자유를 위한 이들의 힘들고 험한 투쟁이 당장은 실패로 끝날지 몰라도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는 결국 승리로 기록될 것입니다.”

비장한 분위기였다. 기도하는 목사나 기도에 참여하는 기자들은 목이 메었다. 혼연일체가 되어 자유언론을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1975년 3월17일 새벽, 회사가 동원한 폭도들이 농성하는 자유언론 기자들을 강제로 축출했다. 기자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조직하여 길고 긴 투쟁의 길을 걷게 된다.


1974년 경동교회에서 열린 고 전태일 열사 4주기 추모예배. 강원용은 박정희 유신정부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종교 간 대화 운동에 나선 강원용. 북한에 식량 보내기, 실업극복운동 등 사회운동을 펼쳤다. 왼쪽부터 강원용 목사, 김수환 추기경,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


■ 크리스찬아카데미 중간집단 교육을 반공법으로 탄압

신군부 ‘김대중 사형 임박’ 듣고는
전두환에 ‘명분·실리 잃는다’ 구명

강원용이 1959년부터 펼치는 대화운동은 자신의 신학적·철학적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에게 대화운동은 인간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이었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사회개혁운동이었다.

“대화는 우리를 일체의 편견에서 해방하며, 자기 자신과 현실을 똑바로 보게 하고 현실의 근원에까지 들어가 현실을 빠르게 파악하여 그것을 풀어가는 인간이 되게 합니다.”

‘한국크리스찬아카데미’가 1965년 10월 출범한다. 1966년 11월 아카데미하우스가 북한산 자락 수유리에 준공된다. 대화운동이 날개를 달게 된다. 1970년 11월 수원에 사회교육원 ‘내일을 위한 집’을 준공한다. 강원용의 생각과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인프라다.

크리스찬아카데미의 인간화 교육, 중간집단 교육은 1970년대 엄혹한 유신시대에, 그 유신시대를 대응해내는 사회운동가 강원용의 경이로운 기획이었다. 한국의 노동운동·농민운동·여성운동 지도자들의 산실이었다. ‘스스로 참여하는 교육’을 통해 삶의 이치를 인식하는 것이었다. 유신 권력은 이 교육운동을 ‘공산주의’의 올가미를 씌워 탄압한다.

야만의 시대가 질주하고 있었다. 1979년 3월 박정희 유신독재는 크리스찬아카데미를 ‘반공법’으로 탄압하고 나선다. 중앙정보부는 아카데미 여성사회 간사 한명숙(전 국무총리)과 농촌사회 간사 이우재(전 민중당 당수)·황한식(전 부산대 교수)·장상환(전 경상대 교수)과 산업사회 간사 신인령(전 이화여대 총장)·김세균(전 서울대 교수)을 연행해갔다. 간사들과 친하게 지내던 지식인들과 아카데미에서 교육받은 노동자·농민·여성 등 50여명도 연행되어 갔다.

3월27일 강원용은 세 정보부원에 의해 연행되어 갔다. 1970년 전태일 분신에 대한 설교로 남산의 부장실에 불려갔는데 처음에는 그런 정도로 이해했다. 그러나 엿새 동안 그는 그 무시무시한 정보부 지하 2층에서 온갖 정신적·언어적 고문을 당했다.

4월16일 정보부는 “크리스찬아카데미 사회교육원 간사들이 불법·비밀 용공단체를 만들어 ‘북괴 노선’에 적극 동조했다”고 발표했다. 고문과 조작으로 만들어낸 사건이었다. 크리스찬아카데미 사건으로 중간집단 교육도 중단되고 말았다. 아카데미의 교육을 받고 현장에서 활동하던 700여명이 불려가 조사를 받고 서약서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교육프로그램을 더 진전시킬 수 없었다.

■ 김대중을 죽이지 말라!

1998년 ‘대통령 당선인’ DJ에게
박노해·백태웅 가석방 건의하기도

“여운형 선생, 이상적 민족 지도자
열린 사람…정당한 평가 못 받아”

1980년 5월 광주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전두환 신군부는 김대중을 ‘내란음모’죄로 몰아 사형을 선고한다. 사형이 집행될 것이라는 정보가 돌았다. 강원용은 모든 인적 채널을 동원했으나 길이 보이지 않았다. 김대중의 운명은 안갯속이었다.

김대중 구명을 둘러싼 긴박한 순간의 고뇌를 나는 강 목사로부터 들었다.

“병석에 누워 있던 정일형 박사가 문병 간 나의 손을 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대중이를 살려야 해, 대중이를 살려줘’라고 호소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NCC 회장 자격으로 전두환에게 김대중을 사형시키지 말아달라는 호소문을 보냈지만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김대중만 살릴 수 있다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 내가 목사인데, 생명을 건지는 것이 더 소중하지, 나의 세속적 명예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1980년 11월25일 오전, 강원용은 청와대에서 대통령 전두환으로부터 국정자문위원 위촉장을 받는다. 공식 행사가 끝난 후 전두환은 강 목사에게 차나 한잔하자면서 자기 방으로 안내했다. 강원용은 김대중 문제를 꺼냈다. 전두환은 김대중의 이름을 듣는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김대중은 물론 그의 부인과도 수십 년 알고 지냈지만, 그는 절대로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내가 언제 공산주의자라고 했습니까. 그 사람은 용공주의자고 선동정치가예요.”

“대한민국 형법 어디에 선동주의자나 용공주의자는 사형시켜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까. 국가적 차원에서나 현 정부를 위해서도 그를 죽이는 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광주사태로 이미 우리나라가 전 세계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데, 김대중까지 죽인다면 들끓는 세계 여론을 어떻게 감당하시렵니까.”

강원용은 명분과 실리를 다 동원하여 전두환을 설득했다. 한 시간이 흘러갔다. 전두환의 얼굴이 풀어졌다.

“내가 김대중 구명에 실제로 얼마만큼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두환은 1981년 1월23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김대중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조봉암의 사형에 이어 우리 정치사에 큰 오점으로 남을 뻔했던 비극이 미연에 방지되었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81년 3월31일 대법원은 광주항쟁의 선두에 선 정동년, 배용주, 박노정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가족들이 김수환 추기경 방에서 구명을 위한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강원용은 농성장을 찾았다. 4월4일 셋 가운데 둘이 집행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든 그런 끔찍한 일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전두환 대통령과의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좀체 면담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4월3일 금요일 오후 3시에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대통령은 도대체 국가존망과 관련되는 일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단호하게, 광주 사람 하나라도 더 죽이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 생명의 존엄성이니 뭐니 그런 고답적인 이야기를 하러 들어온 게 아닙니다, 이건 나라의 존폐가 걸린 문제입니다, 국제 여론이 정말 좋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 몇 명을 죽여서 우리 정부가 얻을 이익이 뭐냐면서 간청했습니다.”

그날 오후 국무회의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을 포함한 광주항쟁 관련자 전원에게 특별감형 및 사면을 결정했다. 강원용은 1983년 7월 밴쿠버에서 열린 WCC 총회에서 차기 회장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운동권 사람들이 대회장 안팎에서 회장 취임을 방해했다. 스스로 회장직을 포기해야 했다.

“양극단을 배제하고 중간에서 조정과 화해의 역할을 자임해온 나의 활동이 불러온 숱한 오해와 비난들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이때처럼 내게 상처와 회한으로 다가온 적은 없었습니다.”

■ 회고록 <역사의 언덕>에서

1997년 여름 소낙비가 쏟아지는 날 강원용은 신인령과 함께 경주교도소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하고 있는 박노해 시인을 면회 갔다. 1998년 1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박노해와 백태웅의 가석방을 건의했다. 그렇게 해서 그해 8월15일 두 사람은 출옥했다. 다시 복권운동에 나서 복권되었다.

<혼불>의 작가로 52세로 요절한 최명희에게 강원용은 대부 같은 존재였다. 1998년 가을 강 목사는 그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걸 예감하고 병실을 찾았다.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목사로서 죽음을 어떻게 예비해야 하는지를 그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준비해간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받는 최명희의 표정이 환해졌다. 미국에 사는 친한 언니의 전화라고 했다. 남편이 암투병 중인데 1년 후엔 완치가 가능한 약이 개발된다는 전화였다. 자기도 1년만 견디면 그 약으로 완치될 수 있겠다고 했다. 강 목사는 그에게 하려던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1년 후엔 완치되기를 희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얼마 후 최명희는 운명했다. 애달픈 최명희의 짧은 생애, 딸처럼 아끼던 한 작가의 운명에 노목사는 가슴으로 울었다. 강 목사는 그의 5주기에 전주 덕진동 그의 무덤 앞에 선다. 노목사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파워사다리

강원용 목사에게 나는 한 시대의 역사와 그 정신을 이야기 들었다. 나는 계속 물었고 강 목사는 증언해주었다. 그렇게 하여 나는 2003년 6월 <역사의 언덕에서> 전 5권을 펴낸다. ‘젊은이에게 들려주는 나의 현대사 체험’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책 제목은 내가 낸 안에 강 목사가 동의해서 정해졌다.

2015년 강 목사 10주기를 앞두고 <역사의 언덕에서>는 <강원용 나의 현대사>라는 제목으로 다시 간행된다. 한길사는 2017년 여해 강원용평전 간행위원회와 손잡고 박근원의 <여해 강원용 목사 평전>, 박명림·장훈각의 <강원용 인간화의 길 평화의 길>, 이경자·강대인·정윤식·홍기선의 <강원용과 한국방송>을 출간한다. 개인 구원과 함께 사회 구원을 위해 헌신한 개신교 목사로서뿐 아니라 문화예술적 기획자이자 사회교육자로서 강원용을 총체적으로 자리매김하는 작업이었다.
(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울산 현대와의 1, 2위 맞대결에서 전북 현대의 승리에 쐐기를 박는 골을 넣은 쿠니모토가 지난 주말 프로축구 K리그1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로 선정됐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쿠니모토를 9라운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쿠니모토는 울산전에 선발 출전해 후반 50분 골지역 오른쪽에서 찬 왼발 감아 차기 슈팅으로 전북의 2-0 완승에 마침표를 찍었다.

유려한 드리블과 번뜩이는 패스로 90분 내내 울산을 괴롭힌 쿠니모토는 전반 44분 한교원의 선제 득점으로 마무리된 프리킥을 얻어내기도 했다.

치열한 선두 경쟁을 펼치던 울산을 저지하며 선두를 수성한 전북은 9라운드 베스트 팀에 이름을 올렸다.

대구FC가 홈에서 강원FC를 상대로 2-1 승리를 거둔 경기는 베스트 매치로 뽑혔다.

연합뉴스
K리그1 9라운드 베스트11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쿠니모토를 비롯해 세징야(대구), 호물로(부산)가 9라운드 베스트11 미드필더로 이름을 올렸다.

베스트11 공격진에는 송민규(포항), 강상우(상주), 에드가(대구)가, 수비진에는 안태현(상주), 홍정호(전북), 하창래(포항), 이용(전북)이 선정됐다.파워볼게임

골키퍼로는 강현무(포항)가 뽑혔다.

K리그2(2부 리그) 8라운드 MVP로는 부천FC와의 원정 경기에서 2골, 1도움을 올리며 서울이랜드의 3-2 역전승을 끌어낸 레안드로가 선정됐다.
[OSEN=잠실, 한용섭 기자] 득점 찬스에선 호랑이가 아니라 고양이 같다. KT의 강백호가 올 시즌 좋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득점권 찬스에서 약하다.

강백호는 30일 잠실 LG전을 앞두고 시즌 타율 3할4푼2리, 최근 10경기 타율 3할5푼3리였다. 10홈런으로 홈런 공동 8위. 3번 혹은 4번으로 중용되고 있다. 그러나 약점, 득점권 찬스에서 타율이 낮다. 득타율이 .222였다.

이날 4번타자로 선발 출장한 강백호는 1회 2사 2루에서 LG 고졸 신인 이민호에게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3회가 더 아쉬웠다. 1사 1,3루 찬스에서 힘없는 유격수 뜬공으로 물러나 타점 기회를 놓쳤다. 5회 중견수 뜬공 아웃, 7회 무사 1루에서 좌완 진해수에게 삼진으로 아웃됐다. 3-3 동점이 된 8회 1사 1,2루에선 좌완 최성훈에게 투수 앞 땅볼로 아웃되면서 또다시 결정적인 찬스를 놓쳤다. 연장 10회 이날 3번째 삼진 아웃을 당했다.

6타수 무안타, 3차례 득점권 찬스에서 강백호가 적시타 한 방만 때렸어도 KT는 연장 11회 끝내기 패배가 아닌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을 지도 모른다. 이날 득점권에서 무안타로 침묵하면서, 올 시즌 득점권 타율은 2할5리(39타수 8안타)가 됐다. 주자가 없을 때 타율 3할5푼6리(59타수 21안타)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프로 데뷔 시즌인 2018년에는 시즌 타율이 2할9푼이었는데, 득점권 타율은 3할8리도 더 나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시즌 타율 3할3푼6리의 고타율을 기록했지만, 득점권 타율은 2할8푼4리로 뒷걸음질쳤다.

올해는 유난히 찬스에서 약한 모습이다. 10개의 홈런 중 솔로 홈런니 7개다. 규정타석에 3개 모자라지만, 타율과 홈런 모두 10위권이다. 그러나 타점은 공동 25위다. 3~4번 중심타선을 치면서 득점권에서 안타 생산을 하지 못한 결과다. 강백호가 찬스에서 좀 더 집중력을 갖고 분발해야 한다. 파워볼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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